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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s 여행이야기

동티모르 기행문 1

누군가 내게 동티모르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느냐고 물어보면 나는 ‘아무런 복잡한 생각 없이 여유롭게 살다왔다’고 표현한다. 그 나라가 평화로워서가 아니라 ‘티모르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티모르의 여유로움 때문이었다. 포르투칼에 450년간 식민 지배를 당한 후 겨우 독립했더니 동남아시아의 패권국가인 인도네시아가 무력으로 침략하여 합병 당했다가, 2002년 독립한 동티모르 사회가 안정되고 내가 다 보지 못했다고 평화롭다고 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아주 평화로운 동네에서 일하고 문화를 교류하고 올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여담이지만 한국에서 느리다고 구박받던 나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속도와 비슷한 티모르에서 여유롭고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 삶의 속도는 티모르인들의 삶의 속도와 비슷할 뿐이었다. 티모르 현지인에게도 느리다고 구박을 받았으니 나도 조금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동티모르라 불리는 곳, UN평화유지군으로서 한국의 상록수 부대가 주둔했던 나라, 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이 올해에만 벌써 2번 방문했고, 올해 한 번 더 방문함에도 국내 언론에서 보도해주지 않는 나라, 그러나 한국을 알고 좋아하고 있는 나라, 이 나라의 정식 국명은 Republic of Timor Leste이다. 동티모르는 호주의 다윈지방 위쪽에 위치해있고 인도네시아의 옆쪽에 있으며 우리나라와 시차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려면 인도네시아 발리를 거쳐 하루에 한 번 뜨는 동티모르행 메르파티항공 비행기를 타고 발리에서 2시간을 더 가야 하는 아무 멀리 있는 곳이다. 주요 수출품은 커피이며, 최근 티모르와 호주 사이의 ‘티모르 존’이라 불리는 해엽에서 석유가 발견되어 주변국의 이목을 끌고 있는 국가이다. 세금과 전기세가 없어 석유를 판돈이나 외국의 원조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처럼 동티모르도 우리와 같은 식민지배 경험을 가지고 있다. 포르투칼에게는 450년간 식민지배를 당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의 식민지배도 당했고, 무엇보다도 1975년 포르투칼의 식민지배를 벗어난 후에는 독립 10일만에 미국의 묵인하에 인도네시아가 무력을 앞세워 강제 합병하여 강압적 통치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인도네시아가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해 1999년 군대를 철수하고 독립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독립을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친 인도네시아계 민병대가 잔인한 살상행위를 시작하면서 티모르는 내전상태에 접어들었고, 이에 호주군을 주축으로한 국제연합 평화유지군이 파견되면서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처럼 티모르도 우리 못지않은 아픈 식민 지배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현지인들과 아픈 역사에 대해 감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축구경기에서 포르투칼팀을 응원하며, 티모르 길거리를 다니는 차의 거의 다가 일본차다. 거기서 레비라는 친구에게 들은 말이지만 월드컵 때 우리가 포르투칼 국가대표팀을 이겼을 때 솔직히 놀랐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일본팀을 응원하는게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한 일인가? 이처럼 티모르 인들은 식민지배를 한 가해 국가에 대해서 우리만큼의 적대감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인도네시아의 폭력적 지배에 대해서는 저항했고, 독립을 이루어 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일본에 느끼는 적대감에는 못 미친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과 티모르인들이 느끼는 그러한 감정에는 온도 차가 있다고 한다. 그 온도차를 우리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우리는 ‘민족성’이라는 단단한 결합감이 계속 내려왔고, 그것이 계속 유지되면서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를 치욕으로 만들어 왔기 때문에 아직도 일종의 경쟁심과 적대감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티모르가 독립이후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티모르 인들에게는 ‘동티모르’라는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립이후 동티모르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국가 건설에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했다. 아마도 지나치게 오랫동안 식민 지배를 당한 결과가 이런 정체성이 사라지는 현상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다시 화제를 바꾸어 사람들 이야기를 해보자. 이 곳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우리팀은 머물렀던 ‘테라 산타’라는 마을의 주민과 더 친해지기 위해서 마을 탐방을 했었다. 우리 같이 낯선 외국인이 집을 구경하겠다고 하는데도 정중히 차와 과자를 대접해주기도 하고 집안 곳곳을 친절히 보여주기도 하였다. 고맙게도 예고 없이 들이닥친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니 참 고마울 따름이었다. 우리가 감동을 받았던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가 코코넛 나무에 열린 코코넛을 보고 뭘까 궁금해 하는 걸 보자 직접 나무에서 코코넛 열매를 따준 일이었다. 그 열매를 받고 마시자니 너무 감동을 받아서 뭐라 감사해야 할지 몰랐다. 이처럼 현지인들은 어디서든지 우리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또 다시 티모르에 가고 싶은 충동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 마을 학교에서 오전에는 아이들과 함께 ‘평화 학교’라는 것을 했다. 한국의 노래를 가르치기도 하고, 마술, 미술, 체육 등으로 나누어서 진행하였다. 이 프로그램 덕에 아이들과 많이 친해질 수 있었고, 티모르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거기에는 3-4개의 한국 팀이 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봉사 수준에 그쳤고, 우리처럼 학교를 열고, 문화 축제를 현지인들과 함께 열고, 함께 학교를 고치며 일하는 팀은 우리 YMCA팀밖에 없었다. 이에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와 같은 교류 없이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봉사를 하는 것은 자칫 우리가 잘 살기 때문에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오만을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죄송하게도 티모르에서 너무 편하게 생활하고 왔다. 오전에 아이들을 가르치며 놀고, 오후엔 다들 적도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일할 때 나는 컴퓨터 설치와 수리를 담당해 그늘에서 컴퓨터를 고치고, 샤워 후 저녁을 먹은 후엔 맥주한잔 들이키며 그냥 도로에 누워 별과 은하수를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생각해보면 티모르에서의 생활이 참 신선놀음이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하루정도는 복잡한 생각을 하며 팀원들과 토론을 한 주제가 있었다. 바로 티모르 커피의 Fair Trade(공정무역)에 관한 것이었다. 티모르의 총 수출 중에서 커피는 48%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티모르의 대표적 수출품이다. 티모르의 커피는 유전자 조작과 같은 인위적인 가공이 되지 않은 야생의 커피라 맛과 향시 독특하며 별다방이라는 커피 판매점에서 한잔에 20$를 받는 고급 커피로 팔린다고 한다. 일본은 이미 2-3개의 시민단체가 티모르와 커피 공정무역을 실시하여 티모르 커피를 가져다가 판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YMCA가 시작했지만 아직 제품이 나오지는 않은 상태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나라에도 티모르 커피를 어떻게 알리고 공정무역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하루정도 열띤 논의를 벌였다. 당장 사업을 시작할 정도로 구체와 되진 않았지만 아직까지도 논의하며 한 단계씩 단계를 밞아 나가고 있다. 이 지면을 빌어 시민회 회원 여러분들도 티모르 커피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나는 결국 티모르 커피와 사랑에 빠져 커피를 10KG이나 한국까지 사와 버렸다. 나의 작은 관심과 노력이 티모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글도 못쓰는 내가 글쓰기 전 개요 짜는 것도 싫어해 생각나는 대로 쓰다보니 횡설수설하며 글을 쓴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동티모르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이다. 동티모르에 다녀온 내가 할 티모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인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시민회 회원 여러분들도 함께 티모르와 같은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그로인해 국제 교류와 협력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